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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찾아서

예산 수덕사의 버선꽃 전설을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4. 8. 14.

 

예산 수덕사의 버선꽃 전설을 찾아서

 

 

 

도련님,

어서 활시위를 당기십시오

 

시중들던 할아범이

숨이 턱에 차도록 채근을 하는데

과연 귀를 쫑긋 세운 노루 한 마리가

저쪽 숲속에서 오고 있었다.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고

화살이 막 튕겨지려는 수간

수덕은 말없이 눈웃음을 치며 활을 거두었다.

 

아니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몰이를 하느라 진땀을 뺀 하인들은

활을 당기기만 하면

노루를 잡을 판이기에 못내 섭섭해 했다.

 

 

너희들 눈에는 노루만 보이느냐

 

그 옆에 사람은 보이지 않느냐

 

이 산골짜기에 저런 처녀가...

하인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

 

도련님, 눈이 부시도록 아리땁습니다.

 

노루 대신 여인을… 헤헤

 

에끼 이녀석,

무슨 말버릇이 그리 방자하냐.

 

 

자 어서들 돌아가자

수덕은 체통을 차리려는 듯

일부러 호통을 치고

갈 길을 재촉했으나

 

가슴은 뛰고 있었다.

노루사냥이 절정에 달했을 때

 

홀연히 나타난 여인,

어쩜 천생연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수덕 도령의 가슴은 더욱 뭉클했다.

 

차라리 만나나 볼 것을…

양반의 법도가 원망스럽기조차 했다.

 

 

이랴.

마상에서 멀어져가는 여인을

뒤로 하고 집에 돌아왔으나

들떠있는 수덕의 가슴은

진정되지를 않았다.

 

책을 펼쳐도

글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눈에 어리는 것은 여인의 모습뿐.

하는 수 없이 도령은 할아범을 시켜

그 여인의 행방을 알아오도록 했다.

 

할아범은 그날로 여인이 누구이며

어디 사는가를 수소문해 왔다.

 

그녀는 바로 건넛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 낭자였다.

 

 

아름답고 덕스러울 뿐 아니라

예의범절과 문장이 출중하여

 

마을 젊은이들이

줄지어 혼담을 건네고 있으나

 

어인 일인지 모두 일어지하에

거절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덕의 가슴엔 불이 붙었다.

 

자연 글 읽기에 소홀하게 된 수덕은

훈장의 눈을 피해

매일 처녀의 집 주위를 배회했다.

 

그러나 먼 빛으로

스치는 모습만을 바라볼 뿐

낭자를 만날 길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가슴을 태우던 수덕은 용기를 내어

낭자의 집으로 찾아 들었다.

 

덕승 낭자, 예가 아닌 줄 아오나…

 

지체 높은 도련님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낭자! 나는 그대로 인하여

책을 놓은 지 벌써 두 달,

대장부 결단을 받아주오.

 

두 볼이 유난히 붉어진 낭자는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일찍이 비명에 돌아가신

어버이의 고혼을 위로하도록

집 근처에 큰 절 하나를 세워 주시면

혼인을 승낙하겠습니다.

 

염려마오. 내 곧 착수하리다.

 

 

마음이 바쁜 도령은 부모님 반대도,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상관치 않고

불사에 전념했다.

 

기둥을 가다듬고 기와를 구웠다.

이윽고 한 달 만에 절이 완성됐다.

 

수덕은 한걸음에 낭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제 막 단청이 끝났소.

자 어서 절 구경을 갑시다.

 

구경 아니 하여도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무엇을 다 안단 말이오.

 

 

그때였다.

 

도련님 저 불길을….

 

절에서 불길이 솟구치고 있는 게 아닌가.

 

수덕은 흐느끼며 부처님을 원망했다.

 

낭자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수덕을 위로했다.

한 여인을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일념으로 부처님을 염하면서

절을 다시 지으십시오.

 

수덕은 결심을 새롭게 하고

다시 불사를 시작했다.

 

매일 저녁 목욕재계하면서 기도를 했으나

 

이따금씩 덕숭 낭자의

얼굴이 떠오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마다

일손을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절을 완성 할 무렵 또 불이 나고 말았다.

 

 

다시 또 한 달.

 

드디어 신비롭기 그지없는

웅장한 대웅전이 완성됐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수덕은 흡족한 마음으로 합장을 했다.

 

도련님,

소녀의 소원을 풀어주셔서

그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이 미천한 소녀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마침내 신방이 꾸며졌다.

 

촛불은 은밀한데

낭자가 조용히 일을 열었다.

 

부부간이지만 잠자리만은 따로 해주세요

 

이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수덕은 낭자를 덥썩 잡았다.

 

순간 뇌성벽력과 함께 돌풍이 일면서

낭자의 모습은 문밖으로 사라졌고

 

수덕의 두 손에는

버선 한 짝이 쥐어져 있었다.

 

 

버선을 들여다보는 순간

 

눈앞에는 큼직한 바위와

그 바위 틈새에 낭자의 버선 같은

하얀 꽃이 피어있는 이변이 일어났다.

 

신방도 덕숭 낭자도

세속의 탐욕과 함께 사라졌다.

 

수덕은 그제야 알았다.

 

덕숭 낭자가 관음의 화신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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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수덕은 절 이름을

 

수덕사라 칭하고

수덕사가 있는 산을 덕숭산이라 했다.

 

지금도 수덕사 인근

바위틈에서는

해마다 버선꽃이 피며

 

이 꽃은

관음의 버선이라

전해 오고 있다는 전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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