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間으로의 여행, 신라문화동인회 10월 답사기(상편)
신라문화동인회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고려불화 특별전과 우리에게 친숙한 98호 황남대총 특별전 그리고 귀경길에 백제 웅진기 수도인 공주에 들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주최한 백제의 관 특별전을 보고 왔습니다. 부족하지만, (특히 사진들이...ㅠ.ㅠ) 답사기를 상(고려불화 특별전), 중(황남대총 특별전), 하(백제의 관)편으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 피운 신라의 뒤를 이어 우리 민족의 강역을 쪼매 더 넓힌 고려시대에도 불교는 왕실의 지원을 받으며 불교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신라의 불교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균형미와 절제미를 자랑하는 석탑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석탑의 나라로 불리우게 될 정도입니다.
고려시대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화려한 고려자기가 떠오르는데, 불교문화의 정수는 무엇일까요? 바로 불화라 한답니다. 여기서 불화는 가정불화의 불화가 아닌 佛畵를 뜻합니다. 통일신라시대의 불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고려 불화는 고려시대 무르익은 귀족문화와 세련된 취향에 바탕으로 고려불교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약 160 여점 정도가 남아 있지만, 안타갑게도 대부분은 해외에 나가 있답니다. 특히 일본에 많이 소장되어 있다고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해외에 흩어져 있는 고려불화들과 한국의 고려 불화를 모아 이번에 고려불화특별전을 개최하였습니다. 해외에 흩어진 많은 고려 불화를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한 것도 처음이고 또 언제 다시 고려 불화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이번 특별전은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엔 일본, 미국, 유럽 및 극내에 소장된 고려불화 및 조선 전기 불화 66점과 함께, 동 시기의 동아시아 불교회화의 경향을 살필 수 있도록 중국 및 일본 불화 20점을 소개합니다. 또 불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높은 불교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불상과 사경, 불교공예품이 더해져 총 108점을 전시하였습니다.
한양까지 가야하는 먼 길이기에 새벽6시, 국립경주박물관 주차장에 모여 언제나 쾌적하고 빠른 신라관광 전세버스를 타고 목적지인 한양으로 GO, GO.
신라관광 소속 타임머신 수레, 오늘은 마부가 바뀌었네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청하는 잠은 오지않고 청하지 않은 잡생각만 떠오르다, 결국 딱 40분인가 잠자고 차에 올랐다. 세번째 따라간 동인회답사인데, 세 번 모두 잠을 거의 못자고 갔다.
차에서 자면 되지, 이렇게 스스로 자위하며 동행한 경주학연구소에서 보내주신 떡과 그리고 동인회에서 준비한 귤과 요구르트를 먹고 좌석에 기대에 잠을 청했다.
꿈속에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했는데, 관음세음보살님이 나를 자꾸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는게 아닌가? 안떨어질려고 온몸에 힘을 주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벼랑으로 떨어지는 순간 눈을 떴다. "휴 살았다" 하고 한숨을 쉬는데, 갑자기 공포영화에서처럼 다시 내 몸이 차량복도쪽으로 떠밀리는게 아닌가? 창가쪽을 보자 옆에 앉으신 포항에 사시는 동인회 보살님이 두손으로 내 어깨를 미시고 계셨다. 두눈이 마주치자..
"아니, 잠을 자는데, 왼 바위가 자꾸 내 왼쪽 어깨를 마구 짖누르지 뭐야? 그래서...^^"
"헉,,,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
선산 휴계소에서 잠시 쉴 때 우리 수레(버스) 옆에 27석 VIP 관광버스도 보이던데... ㅎㅎ
거의 5시간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해 전시관으로 향하는 동인들, 이번 답사는 경주학연구소와 함께한 합동답사 형식이라 평소보다 많은 약 80 여명이 함께 했습니다.
서울서 태어나 약 29년을 살았었지만, 머리털나고 처음가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앉으셨던 포항에 사시는 동인회 보살님도 처음 가보신단다.
박물관엔 국립중앙박물관 박방룡 유물관리 부장님께서 동인회를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박방룡 유물관리 부장님은 57년 역사의 경주어린이박물관 출신으로 휴무일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오셔서, 이날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박방롱 부장님 감사합니다. ^&^
고려불화전은 입장료 3000원이 있었습니다만, 김윤근 동인회 회장님께서 사비를 터시고 박방룡 부장님이 힘을 쓰셔서 동인들은 별도의 부담없이 고려불화전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김 윤근 회장님, 감사합니다 ^&^
현재 시각 11시 정각
이제부터 2시까지 자유관람시간입니다. 박방룡 부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함께 행동해도 되고, 원하는 곳을 개별 행동해도 되고.... 저는 일행이랑 떨어져 먼저 고려불화특별전으로 향했습니다. 원래 게릴라 체질이라...ㅎㅎ
먼저 고려불화전부터 ....
위에서 언급했듯이, 똑딱이 사진기에, 주최측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화질이 대단히 안좋고, 거기에 불화는 찢어진 워커에겐 너무나 생소한 것이기에... 대충보시기 바랍니다.
그나마 양호한 사진을 골라 올립니다.
PS : 불화에 대한 설명은 이번에 발간된 거금을 들여 구입한 고려불화대전 도록을 참조했습니다. 사실은 고대로 배꼈습니다..@@
석가모니불도
비단에 색, 217.8 X 112.7cm
고려 후기 또는 중국 元. 미국 클리브랜드 박물관
높은 대좌에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불을 그렸다. 이 석가모니불도는 현재 세카도문고박물관에 소장된, 문수보살도, 보현보살도와 함께 삼존을 이루었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두광은 붉은색과 금으로 칠하고, 내부에도 약간 바림을 하듯 금으로 두텁게 표현하였다. 석가모니불의 법의는 백색안료로 하이라이트를 주었고, 대좌 및 아난과 가섭으로 보이는 승려도 반짝이는 느낌의 다채로운 색채로 표현하였다. 석가모니불의 붉은색 가사에는 용과 구름으로 이루어진 원형 문양을 그려 장식하였다. 눈에 뛸 정도로 가늘고 긴 손가락과 희고 긴 손톱, 대좌의 다양한 장식, 석가모니불의 얼굴형과 이목구비 표현 등도 특징적이다. 이는 대부분의 고려불화가 공유하는 특징과는 다소 다른 점이며, 이런 이유를 들어 이 작품을 중국 원대 불화로 보는 견해도 있다.
화엄경
감색 종이에 금, 절첩 31 X 11cm
고려 후기. 일본 도쿠가와미술관 소장
80권본 화엄경 권제4 세주묘엄품 제1의 내용을 쓴 사경으로, 표지에는 감색 종이에 금으로 연화문과 보상화문을 그렸다. 책머리에는 절첩의 4면에 금니로 변상도를 그렸다. 변상도는 좌우로 양분되는데, 우측에는 비로자나불의 설법장면을, 좌측에는 주대신을 비롯한 14명의 신들이 찬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각 존상이 그려진 이외의 공간에는 운문, 격자문 등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14세기 중엽의 형식화된 양상을 발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미타삼존도
비단에 색, 111.2 X 50.9cm
고려 후기. 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설법도 형식의 아미타삼존불이다. 보통 설법도 형식에서 아미타불이 두 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붙인 상태로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세워 들고 왼손은 명치 높이로 눕혀 든 모습을 보이는 데 비해, 왼손은 옆구리 정도로 내려들고 있다.
본존은 얼굴과 턱선이 풍만하고 손의 표현이 두툼하며, 육신부의 윤곽을 표현하는 주선이 다른 작품에 비해 굵고 경직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둔중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협시보살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본존은 육신부 전체를 금니로 칠한 데 비해 보살의 육신부는 살구색을 칠하였고, 본존보다 밝고 발그레한 주선과 붉은 바림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이번 특별전에서 선보인 불화들 중에서 특히 뛰어난 불화 중 하나인 아미타불도.
화질이 너무 안좋아 경주학연구소에 구룡산님이 올리신 자료들을 몇 장 퍼와서 아래에 올립니다. 구룡상님 죄송합니다.
아미타불도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 자료)
비단에 색, 190 X 87.2cm
고려 후기. 일본 쇼보지(正法寺)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ㅠ.ㅠ)
내영도 형식의 아미타불도이다. 아미타불은 왼손을 가슴 높이에 올리고, 오른손을 아래로 내린 채 앞으로 진행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부처의 신체는 균형이 잡히고 꼿꼿이 선 채 허히를 앞으로 약간 내밀고 있어 당당한 느낌을 준다. 부처의 가슴에는 만卍자가 있으나, 손바닥의 법륜은 없다. 부처의 육신부는 살구색, 가사는 붉은색, 대의는 녹색으로 칠하였다. 육신부의 윤곽선은 먹선을 따라 옅은 붉은색 선을 그어 입체감을 주었다. 의습의 윤곽선은 한 단계 진한 색으로 윤곽을 그린 후, 윤곽선 가장자리에 금니선을 가늘게 덧그렸다.
이마의 경계선과 귀 주변, 귓바퀴 안쪽, 눈섭, 수염 부분에는 가는 먹선으로 터럭의 올까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눈썹은 윗부분을 청색, 아랫부분을 녹색으로 그려 이중선을 구사하였다.
문양도 매우 다양한데, 붉은 가사 위에는 금니로 다양한 연화원문을 세밀하게 그렸고, 가슴 아래 드러난 승각기 부분에는 물방울 형태의 모란문을 표현하였다. 옷자락이 구불구불하게 그려진 것은 송대의 불화와 통하는 점이다. 약간 뒤로 나부끼듯 그려져 전진하는 느낌을 준다.
소장 사찰의 안내자료에 의하면 이 그림은 '붉은 석가'라는 이름으로 항간에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는 아미타불의 가사가 매우 아름답고 선명한 붉은색인 데서 각인된 인상으로 보이며, '석가'라는 이름으로 보아 현지인들에게는 석가모니불 도상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미타불도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 자료)
아미타불도
비단에 색, 104. X 46cm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아미타불이 오른팡을 앞으로 뻗어 내리고 왼팔은 가슴 부근에 두면서, 연화좌 위에서 몸을 약간 오른쪽으로 돌려 화면 왼쪽 하단을 향하여 서 있는 내영도 형식의 그림이다. 일본 지온인, 젠린지 소장 아미타불도와 자세나 구성 요소가 거의 같다.
가사에는 주색, 대의와 치마에는 녹청색과 군청색을 사용하고 연화좌의 잎은 백색 안료를 사용하였다. 신체에는 금니를 칠하도 삼도나 손의 윤곽선 등을 주선으로 표현하였다. 대의와 치마에는 경쾌한 운문을 사용하였고, 가사에는 연화당초원문을 사용하여 장식하였다.
아미타삼존내영도
면에 색, 142.5 X 94cm
중국 서하 13세기.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세지보살이 구름을 타고 죽은 자를 맞이하러 오는 아미타삼존내영도이다. 중국계에 속하는 불화로 면 바탕을 사용하고 강열한 색감을 사용하였다. 관음보살의 보관에는 화불이, 세지보살의 보관에는 정병이 있어, 존격을 뚜렷이 드러내 준다. 나무 밑에 앉은 왕생자는 승려의 차림으로 두 손을 합장하고 있으며, 그의 머리에서 마치 영혼과 같은 빛줄기가 위로 발하고 있다. 빛줄기 속에는 왕생을 의미하는 어린아이가 막 연화대에 오르려 하고, 아미타불의 이마에서 발하는 서기가 내려와 어린아이를 감싸고 있다. 손을 내민 아미타불, 연화대를 들고 다가서는 보살, 그 앞의 왕생자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구도는 고려불화 중 삼성미술관 소장 아미타삼존도와 매우 가까워 오래 전부터 주목받았다.
이 불화도 역시 빼어난 작품 중 하나입니다. 화질이 쪼까 문제가 있기에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의 사진을 마구 퍼왔으니, 아래 사진을 보세요...@@
아미타삼존도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 사진)
비단에 색, 100.5 X 54.2cm
고려 후기. 일본 MOA미술관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ㅠ.ㅠ)
내영도 형식의 아미타삼존도이다. 본존은 오른손 바닥을 내밀며 팔을 길게 뻗고 시선은 아래를 응시함으로써 왕생자를 맞이하는 분위기를 강조하였다. 아미타불과 보살의 얼굴은 경직되지 않고 생동감이 있으며, 고개를 약간 숙이는 시선 처리와 진행방향의 암시로 인해 마치 그림의 한 끝에 왕생자가 있는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고려불화가 육신부에 주선을 사용하는 데 비해 본존의 육신부에 주선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점, 그리고 옷주름 표현에서 먹선 또는 한 단계 짙은 색선을 긋고 가장자리를 따라 가늘게 금니선을 덧그리는 관습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먹선 또는 한 단계 짙은 색선만 사용하였다는 점이 표현상의 특징이다. 또한 보통 고려불화에 그려지는 원형 문양이 원시적으로 형태만 원형으로 형성될 뿐 가장자리에 윤곽선이 그려지지 않는 데 비해, 이 불화의 원형 문양은 실제로 윤곽선을 돌리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도 훌륭하다.
아미타불도
비단에 색, 163 X 87cm
고려 후기. 일본 교쿠린인(玉林院)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미타불은 화려하게 장식된 높은 연화좌 위에 앉아 설법하는 자세이다. 육신부의 윤곽선은 붉은 선을 사용하거, 가가의 옷주름은 짙은 붉은 선과 금니를 사용하였다. 다른 윤곽선에는 먹선을 많이 사용하였다. 머리에는 나발을 표현하고, 가슴에는 만卍자, 양 손과 발바닥에는 법륜을 그렸다.
부처의 법의에는 금니 문양을 많이 그렸으나, 대좌에는 금니 사용을 줄이고 영락 등 장식적 요소를 활용하였다. 광배는 금선, 주선, 먹선, 녹색 바림 등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여러 겹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대좌 아래에는 구름 표현이 있다. 대좌 아랫부분과 구름의 형태로 보아 화면이 다소 잘려나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아미타불도는 충해호 구멍이 뚫린 낡은 나무상자에 일본에서 제작된 문수보살도, 보현보살도와 함께 세 폭이 나란히 보관되어 있다. 세 폭의 크기는 거의 일치하며, 각 족자 딋면에 석가, 문수, 보현이라고 기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미타불도는 석가모니불도상르호 인식되었고, 이후에 삼존도 형식으로 만들기 위하여 문수보살도와 보현봘도를 새로 그려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아미타불도가 일본에서 석가모니불도로 인식된 점과 서로 국적이 다른 불화가 함께 삼존을 이루게 된 점이 흥미로운 예이다.
보현보살도
비단에 색, 165 X 92.5cm
일본 에도. 일본 교쿠린인(玉林院) 소장
워커의 헛소리 : 일본에서 그린 불화란 선입견 때문인지, 보현보살님이 마치 춘화도를 들여다 보고 계신 듯한 착각이...@@
문수보살도
비단에 색, 165 X 92.5cm
일본 에도. 일본 교쿠린인(玉林院) 소장
문수보살은 여의를 들고 사자를 타고 있으며, 붉은 치마에는 초화문이 그려져 있다. 사자의 곱슬거리는 털은 가는 먹선과 금니로 정리하였다. 보현보살은 두루마리를 들고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푸른 옷을 둘러 입었으며 옷주름은 매우 굵은 먹선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처럼 도교적이며 민속적인 분위기를 띠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도상은 중국 원대 불화 혹은 그것을 모본으로 하여 그려진 일본 불화에서도 볼 수 있는데, 교토 로쿠오인(鹿王院) 소장의 원대 석가삼존도,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석가삼존.나한도 등에서도 같은 계열의 도상을 볼 수 있다.
초대형 불화가 보이길레 열심히 찍었는데, 복사 확대해 달아놓은 것이더군요...@@
관경십육관변상도는 여러개가 전시되었는데, 그중 하나만 올립니다.
관경십육관변상도
비단에 색, 183 X 121cm
고려 후기. 일본 오타카지(大高寺) 소장
이 작품은 관무량수경의 중심 부분인 정종분의 내용을 그린 관경십육관변상도로, 극락세계의 열여섯 가지 장엄한 모습을 관상함으로써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화면의 구도는 크게 상단, 중앙, 외연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화면 상부에는 9개의 원이 있고, 좌우에 각각 2개의 원으로 13관상을 표현하였다. 상부의 좌측 위에서 아래로 두 번째에 위치한 제13관 상배관은 도상을 확인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모양이 불명확하고 명칭니나 게송이 기재되지도 않아서 각각의 도상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중앙은 전각을 중심으로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하단의 전각에는 부처와 권속들을 배치하고, 좌우에는 빈 대좌와 보리수를 배치하였으며, 보리수에는 붉은색의 열매를 표현하였다. 잔각의 상단부분에는 중단의 전각을 감싸듯 신비로운 빛이 좌우로 뻗어 올라가고, 여기에 하강하는 비천을 좌우에 배치하였다. 중단의 전각에도 부처와 권속들을 배치하고, 그 좌우에는 여러 성중과 공양하는 비천을 그렸다. 상단의 전각에도 부처와 권속들, 구름을 타고 나타나는 시방제불과 가릉빈가를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화사하며 중간색 톤을 적절히 사용한 색채감이 특징이다.
아미타팔대보살도
비단에 색, 135 X 86cm
고려 후기. 일본 게긴지(桂岩寺) 소장
이 아미타팔대보살도의 구성은 주존에 비해 보살의 크기가 커져 좌우측 보살이 한 줄에 가까게 앞뒤로 늘어서고, 이에 따라 마지막 보살의 위치가 주존의 머리 높이를 넘어 화면의 상단까지 물러선 모습을 보여준다. 통상적으로 주존이 좌상인 경우 보살의 키가 주존의 무릎선 아래에 머물렀고, 입상으로 그려지더라도 주존의 어깨높이를 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변화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배치를 선택한 것은 각 보살의 지물이 앞쪽 보살의 신체에 가려지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한 배려로 보이며, 팔대보살의 지물이 반드시 인식되고 구별되어야 하는 주요한 상징물임을 의미한다.
고려시대의 아미타팔대보살도에서 각 보살의 위치는 그림이 기초로 했던 저본에 따라 조금씩 다르면서도, 좌측에 배치되는 보살과 우측에 배치되는 보살은 항상 일정하다. 그리고 열덟 보살은 지물을 기준으로 한쌍을 이루는데, 정병(보관에 화불)-경합(보관에 정병) 또는 화염보주(보관에 화염보주), 경책-여의, 연화-원형보주, 독고저-칼을 든 보살이 대칭으로 배치된다는 특징이 있다.
보살의 배치는 일견 도쿠가와미술관본과 달라 보인다. 그러나 주존과 함께 보살이 모두 오른쪽을 향하는 화면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도쿠가와미술관의 배열대로 보살을 세워놓고 화면 오른쪽 깊은 곳에서 보살들을 바라본 것처럼 배열을 조정하였기에, 기본적으로 도쿠가와미술관본의 배열과 같다.
아미타팔대보살도
비단에 색, 155.4 X 87.2cm
고려 후기 일본 고후쿠고코쿠겐지(廣福護國禪寺) 소장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불 아래로 여덟 보살이 좌우 네 명씩 서있는 구도로, 보살이 약간씩 몸을 튼 모습과 변화 있는 시선 처리, 자연스러운 묘법 등에서 아미타팔대보살도 중 시대가 이른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아미타불의 향좌측 제일 앞에서 있는 보살은 보관에 화불이 있고 내려뜨린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이 보살과 대칭되는 위치의 보살은 보관에 정병이 있고 왼손에 경합을 들고 있다. 이러한 보관과 보관 위의 상징물은 순희 10년(1183)명 지온인(知恩院) 소장 아미타정토도 등 남송대 불화에서 관음보살, 세지보살을 표현한 전형적인 방법이다. 이처럼 고려시대의 아미타팔대보살도에는 불공(不空)의 팔대보살만다라경에 언급되지 않은 세지보살이 등장하기도 한다.
팔대보살의 조성근거로 팔대보살만다라경이 가장 많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고려불화의 팔대보살은 지물의 종류와 표현 형식에 있어 이 경전 외에도 중국 불화의 도상 전통과 태장만다라 등에 언급되는 내용이 혼재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 아미타팔대보살도에 보이는 배열방법의 다양성으로 보아 고려에서는 이 경전에 언급된 배치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으며, 팔대보살만다라의 독자적 성격보다는 아미타독존도, 아미타삼존도에 이어 서방극락정토에 중생을 왕생시키고자 하는 아미타불의 본원을 성취하는 실천자 무리로서 팔대보살이 아미타불과 함께 신앙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번 전시품들중에 걸작에 속하는 불화입니다. 사진이 후져서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이 올리신 자료를 퍼왔습니다.
수월관음도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 사진)
비단에 색, 142 X 61.5cm
고려 후기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일반적으로 수월관음도가 암좌에 반가좌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이 수월관음도는 물방울 형태의 광배 안에 서 있는 자세로 표현되어 있다. 관음이 딛고 선 연화좌는 물 속에서 솟아나 있으며, 물결무늬는 먹선으로 구불구불하게 그어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결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발치 앞에는 꽃묶음이 솟아올라 있고, 그 앞에는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향해 손을 모으고 있다.
관음보살이 양손을 가슴 앞까지 올려 한 손에는 정병을, 한 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 자세는 게간지(桂岩寺), 조쿄지(淨敎寺), 도쿠가와미술관 소장 아미타팔대보살도의 관음보살에서도 볼 수 있는 자세이다. 그러나 필선이 매우 가늘고 섬세하며 채색을 강하게 하기보다는 차분하면서도 단계적인 하이라이트 효과를 주려고 노력하는 점 등 표현상으로는 상당한 큰 차이를 보인다. 시대를 내려갈수록 표현 기법과 형태가 단순, 경직, 공예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참고한다면, 필선이 세밀하고 존상의 형태가 늘씬하고 부드러우며 색채의 단계적인 변화를 살린 이 수월관음도의 제작시기는 여타의 작품들보다 상당히 올려볼수 있을 것이다. 비록 연대는 없으나 이 수월관음도는 작품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해동치납혜허필'이라는 명문을 통해 분명한 한국 작품임을 알 수 있고, 승려 화가 ㅗㅖ허가 그렸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 고려불화의 기준작이다. 또한 기존 불화들의 화기에서 '필筆'의 의미가 '그림을 그렸다'는 의미인지 혹은 단순히 '화기를 기록했다'는 의미인지 다소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 그림의 화기는 비록 기존의 의문을 분명하게 판가름해 줄 정도는 아니지만, '筆'이 '그림을 그렸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예이다.
수월관음도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 사진)
수월관음도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 사진)
그런데 선재동자가 좀 많이 늙고 속세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네요. 구도의 길이 쉽지 않는듯 하군요..ㅎㅎ
이 분도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사진이 후져서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이 올리신 사진을 아래에 퍼왔습니다.
수월관음도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 사진)
비단에 색, 110 X 57.7cm
고려 후기. 일본 단잔진자(談山神社) 소장
이 작품은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보타락가산의 기암괴석과 옷주름에 시문된 금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 작품은 화암경 입법계품의 내용과 법화경 관음보살보문품의 내용을 한 화면에 그린 작품으로 경전의 융합을 보여 주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화엄경 입법계품 가운데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구도여행을 떠난 선재동자가 28번째 선지식인 관음보살을 방문하여 대자비의 가르침을 받는 장면이 주를 이루고, 우측 하단에 법화경 관음보살보문품에 등장하는 재난구제에 대한 내용을 나찰귀, 우산을 쓴 사람, 맹수와 독사에 쫓기는 모습, 도적에게 화를 당하는 모습, 목에 칼을 찬 모습,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 화마에 휩싸인 가옥, 배를 젓는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재난을 만났을때 관음보살을 부르기만 하여도 어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경전의 내용을 묘사한 것이다.
관음보살은 주선으로 윤곽을 잡고, 눈썹은 먹선과 녹청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가는 먹선으로 눈썹을 표현하였다. 목에 표현된 삼도는 다이산지(太山寺) 소장 수월관음도와 같이 선묘의 능형으로 표현되었으며, 가슴에 커다란 목걸이를 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손목에 걸쳐 늘어뜨린 투명의 염주를 엄지와 중지로 살며시 잡고 있어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관음보살은 보관에 사라를 쓰고, 승각기와 치마를 착용하고 있다. 보관에서 발 아래까지 드리워진 사라에는 마엽문을 바탕으로 그 위에 연화당초문을 금니로 그렸다. 사라에 가려진 녹청색의 승각기에는 술렁대는 파도문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선홍빛 군의에는 흰색 선으로 귀갑문을 연속 배치하고, 그 위에 연화하엽문을 주선으로 표현하였다. 색채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나 주색, 분홍색, 녹청색 등을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수월관음도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 사진)
수월관음도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 사진)
수월관음도 (경주학연구소 구룡산님 사진)
수월관음도
비단에 색, 146 X 85.5cm
고려 후기. 일본 고잔지(功山寺) 소장
이 작품은 관음보살이 측면을 향해 앉아 있는 전형적인 수월관음도 형식과 달리, 관음보살이 결가부좌하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관음보살이 정면을 향하도록 그린 수월관음도의 예는 야마토문화관 본을 비롯하여 몇 점이 있으며, 이러한 자세는 조선 초기로 계승된다.
관음보살은 오른손을 아랫배에 두고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연꽃가지를 받쳐들고,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로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연꽃을 잡고 있는 양 손바닥에는 법륜을 주선으로 그려 넣었다. 관음보살이 연꽃을 들고 있는 도상적 근거는 '관세음보살설소화응현득원다라니'의 내용과 관계가 있으나, 수월관음도에서 관음보살이 연꽃을 들고 있는 예는 드문 편이고, 조라쿠지(長樂寺) 소장본 등 일부에서만 볼 수 있다.또한 보관에 표현된 화불 역시 관음보살이 좌상인 경우 화불도 보통 좌상으로 그리지만, 작품에서는 화불이 입상으로 묘사되어 이채롭다. 정병도 보통은 좌측에 위치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우측에 있으며, 통상 관음보살 뒤편에 그려지는 대나무도 화면 하단 좌우에 기암괴석과 함께 그려져 있어 일반적인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관음보살의 선홍색 치마에는 흰색으로 귀갑문을 그리고내부에 국화문을 배치했으며, 그 위에 연화하엽문을 그렸다. 보관에서 늘어뜨린 사라에는 흰색으로 마엽문을 그리고 그 위에 S 자형 당초언문을 금니로 그렸다.
화면 하단의 선재동자는 관음보살이 정면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시선이 맞지는 않는다. 대신 화면 가운데를 향해 합장을 하고 있으며, 통통한 얼굴에는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띠고 있다.
관음보살좌상
높이 38.5cm
고려 14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앉은 자세에서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올려놓은 채, 결가부좌한 왼쪽 다리 뒷편으로 왼손을 바닥에 짚고 있는 이른바 윤왕좌(輪王坐)를 취한 관음보살상이다. 윤왕좌의 관음보살상은 중국의 송.원대에 크게 유행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와 조선초기에 걸쳐 주로 불화에서 많이 보이나 조각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화려한 보관을 쓰고 갸름한 얼굴선에 신체는 가늘고 길다. 花形의 커다란 귀걸이, 화려한 영락으로 뒤덮인 신체 등 이 불상은 기본적으로 라마 양식 불상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윤왕좌의 자세이나 티베트나 중국 불상 특유의 관능미와 과도한 장식성을 억제하고 부드럽고 다소 단순화된 조형을 보이는 점은 라마 양식의 한국적인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워커의 헛소리 : 이번 고려불화전시회에는 불화 이외에 몇 가지 다른 유물들이 전시 되었는데, 그중 하나인 관음보살좌상입니다. 가냘푼 몸매에 도도하게 윤왕좌를 하고 앉은 관음보살의 자태에는 종교적 장엄함과 함께 은은히 느껴지는 관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넘 맘에 들어서 사진을 한 장 더...ㅋㅋㅋ
금강저
길이 24.9cm
고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강령
고려. 높이 21.1cm.
고려시대 밀교의 의식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강저와 금강령이다. 금강저는 제석천의 무기인 벼락을 형상화한 것으로, 마음의 번뇌를 없애준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밀교 계통의 경전에는 의식을 행하거나 염송을 할 때 왼손에 금강저를 잡는 다고 쓰여 있다. 손잡이 양끝의 창처럼 뾰족한 부분을 고부라고 하는데, 이 고의 수에 따라 독고저, 삼고저, 오고저라고 부른다. 의식때 소리를 내는 법구인 금강령은 종과 금강저를 결합한 형태이다. 금강저와 마찬가지로 손잡이 끝의 고의 수에 따라 독고령, 삼고령, 오고령이라고 부르며, 그 밖에 보주령, 탑령 들이 있다. 종신에는 사천왕상이나 범천, 제석천 등이 주로 표현된다.
워커의 헛소리 : 얼마전 문명대 교수가 쓴 불교관련 책에 금강저 관련 글을 읽고 얼마나 클까? 상상을 했었는데, 실물을 보니 쪼매하군요. 난 드라마 태조왕건에 나오는 궁예가 휘드른 법봉만 할줄 알았는데.. @@
보물 제344호 정병
높이 33.9cm. 고려 14세기.
국보 제92호 정병.
고려 12세기. 청동 높이 37.5cm
인도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정병은 일반적인 물병과 형태가 다르다. 몸체의 어깨에는 물을 넣은 부분인 짧은 주구가 붙어 있고, 병목 위에는 물을 따르는 대롱 모양의 가늘고 긴 첨대가 있다. 국보 92호 정병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정병의 형태이다. 무늬대로 홈을 판 후 은선을 끼워 넣어 장식하는 은입사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몸체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물가에서 헤엄치는 새들과 배를 탄 사람 등이 표현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여러 가지 무늬를 다양한 기법으로 장식한 청자 정병도 만들어졌다. 고려 후기가 되면 주전자처럼 가늘고 긴 형태의 주구가 달린 정병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지정보살도
비단에 색, 106.8 X 45.5cm
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지장보살이 오른손에 보주를 들고 왼손으로 석장을 짚고 서 있는 자세이다. 머리에는 원형 문양이 있는 두건을 쓰고, 띠를 두른 후 귀 뒤에서 매듭을 지어 늘어뜨렸다.
지장보살의 자세는 어색함이나 흔들림이 없고 각 모티브사이에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이고 있어 화면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준다. 또한 옷단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파도문, 연화당초문, 운문, 화문 등 다양한 문양을 그렸는데, 문양의 형태나 선의 구사 역시 정교하고 안정된 솜씨를 보여 이 작품이 매우 숙련된 전문 화가의 작품임을 느끼게 한다. 일본 도쿠가와 미술관 본과는 거의 같은 형태를 보이고 있어 이러한 유형의 모본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지장보살도
비단에 색, 143.4 X 78.3cm
고려 후기. 일본 요주지(養壽寺) 소장
지장보살도로는 드물게 사각의 대좌에 앉아 왼발을 내리고 반가좌한 모습으로 정면을 향하고 있는 독특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얼굴은 방형에 가까우며 목으로 이어지는 삼돈느 좌우측 가장자리에만 선묘를 가해 입체감을 주었다. 목걸이 장식 아래의 가슴과 상복부를 주선으로 표현하였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오른손을 어깨까지 들어 하늘을 향한 손바닥 위에는 보주를 올려놓고, 왼손으로 무릎을 짚고 있다.
두건에는 원문을, 녹청색의 가사에는 국화가 결합된 연화당초문을 , 치마에는 보상화당초문을 그렸다. 옷의 단 부분에도 모란문, 화문 등 다양한 문양을 시문하였다. 전체적으로 색채의 조화가 뛰어나 안정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보물 1287호 지장보살도
비단에 색, 98.8 X 50.2cm
고려후기. 개인소장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주존인 지장보살이 바위에 앉아 있고, 좌우 두 인물이 사선으로 서 있으며, 사자가 머리를 땅에 대고 있어 다른 지장보살도에 비해 독특한 구성을 보인다.
승려형의 지장보살을 중앙에 큼직하게 표현하고, 좌측에 도명존자를, 우측에 무독귀왕을 배치한 삼존도 형식이다. 지장보살은 왼발을 아래로 내려 연화좌를 밟고 있으며, 오른발은 올려 바위 위에 반가좌로 걸터앉아 있다. 오른손은 투명한 보주를 들고, 왼손은 무릎을 짚고 있다.
왼쪽에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도명존자는 여섯 개의 고리가 달린 긴 석장을 잡고 있으며, 왕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무독귀왕은 경전을 담은 상자를 받쳐 들고 있다. 밑에는 사자가 입을 벌린 채 엎드려 있다.
시왕도(제1 진광왕)
비단에 색, 61.5 X 45cm
고려 후기. 미국 하버드 아서 새클러 박물관 소장
시왕도(제4 오관왕)
비단에 색, 61.2 X 45cm
고려 후기. 미국 개인 소장
시왕도(제5 염라왕)
비단에 색, 61.2 X 45cm
고려 후기. 미국 개인 소장
시왕도(제8 평등왕)
비단에 색, 61.2 X 45cm
고려 후기. 미국 개인 소장
시왕도(제10 오도전륜왕)
비단에 색, 61.2 X 45cm
고려 후기. 미국 개인 소장
열폭으로 이루어진 시왕도 세트의 일부로서, 각각 제1 진광왕, 제4 오관왕, 제5 염라왕, 제8 평등왕, 제10 오도전륜왕을 그린 그림이다. 이 세트는 예전에는 해리 패커드(1914-1991) 소장본이었다가 흩어져 현재는 미국 하버드아서 박물관, 개인 그리고 호놀룰루예술대학과 덴버 미술관으로 분산 소장되었으며 총 9점이 남아 잇다. 이처럼 지옥을 관장하는 열 명의 왕을 한 폭에 한 명씩 묘사하는 형식의 시왕도는 남송대 중국 닝보에서 대규모 공방을 운영한 金處士, 陸信忠의 작품을 중심으로 일본에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시왕도는 남송대의 닝보에서 그려진 시왕도와는 달리 10세기 경의 둔황의 수권 형식 시왕도의 도상을 많이 반영하고 있으며 닝보 시왕도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자극적인 지옥 장면 등이 적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불화 중에는 비교할 만한 작품이 적어 조심스러우나, 이 시왕도의 세트가 고려 불화일 가능성은 여러 번 제시되어 왔다. 먼저 도상적으로는, 시왕도의 전거인 '예수시왕생칠경'에서는 내하를 건너는 장면이 본래 제2뢍에 속하는데, 이 시왕도의 세트에서는 제1뢍에 그려져 있다. 그런데 같은 혼동이 13세기의 고려 해인사본 '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어, 지역적으로 일어난 혼동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또한 양식적으로는 공간 구성이나 색채의 구사가 닝보에서 제작된 중국 시왕도와 상당히 다르고, 인물의 옷주름이나 사물의 선에 중첩하여 그린 금니선, 각종 금니 문양 등이 고려불화에 가까운 특징을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시왕도세트가 고려 불화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점이다.
보물 784호 지장보살도
비단에 색, 104.3 X 55.6cm
고려 후기.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화면은 상하로 나누어 상단에는 두건을 쓰고 반가좌한 지장보살을, 하단에는 범천과 제석천을 중앙에 배치하고 그 양쪽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가운데 줄에, 사천왕을 윗줄과 아랫줄에 나누어 그렸다.
지장보살은 반가좌 자세로 앉아 왼손은 무릎에 대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들어 위를 향한 손바닥에 보주를 들고 있다. 방형에 가까운 얼굴은 엄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단의 범천과 제석천은 비교적 통통한 얼굴에 안정된 자세를 보이나, 사천왕은 비교적 동세를 띤 모습으로 그려졌다.
지장보살은 두건을 쓴 모습으로 표혀되었다. 지장보살과 관련된 여러 경전에서 본래 지장보살의 모습은 머리를 깍은 승려의 형상으로 언급되고 두건에 대한 근거는 보이지 않으나, 둔황 지역에서 출토된 문서인 환혼기(還魂記)에 중국 양주 개원사의 승려 도명이 명부에 갔다가 두건을 쓴 지장보살을 보았다는 내용이 있어 이와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워커의 헛소리 : 호암재단이 국보급 문화재 좀 가지고 있다는데, 기업 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통 크게 걍 기부하면 안되는지..ㅎㅎ.
원래 특별전이라 사진 촬영이 금지였습니다. 돈내는 특별전은 다 그렇더군요. 국립중앙박물관측엔 대단히 죄송합니다. 궂이 변명을 하자면 플레쉬 안쓰고 찍은 사진이라는 것입니다. 사진 확인해 보니 노이즈 잔뜩끼고 좋지도 않은 사진 찍으려 왜 그리 바둥거렸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차리리 평생 잊혀지지 않게 천천히 들러 보며,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해 담아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듭니다.
금지된 행동을 하려면 얼굴에 철판도 깔아야 하고 연기도 잘해야 합니다.
사진 찍다가 처음 걸리면 순진무궁한 표정을 지으며 "아유..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미처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정말"
두번째로 걸리면 애원하는 투로 "정말 미안합니다. 그런데 이 전시물이 너무 너무 맘에 와 닿아서 저도 모르게 그만 카메라 셧터에 손이....죄송합니다. 사진 지울까요? ㅠ.ㅠ"
세번째 걸리면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에이, 좀 봐주세요.. 선수들끼리...ㅎㅎ"
네번째 걸리면 그땐 막나가야 한다. 일단 인상을 쓰며 짝다리를 짚고 "아이.. 참. 이 아가씨가 정말...사진 몇 장만 더 찍고 조용히 갈께요!!! 짜중나게 시리... ㅡ,.ㅡ ++ (나 무서운 사람이야!!!)"
고려불화전에서는 조선의 불화와 일본, 중국 불화 코너를 빼고 거의 사진을 다 찍었는데, 마지막에 딱 한번 걸렸는데, 시간 상 황남대총보러 가야할 시간이기에 걍, 황남대총 코너로 갔습니다.
다음은 중편(황남대총특별전)을 올리겠습니다. 사진은 후졌지만...ㅠ.ㅠ
'팔도문화재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약산 표충사를 찾아서(2) (0) | 2010.11.03 |
---|---|
[스크랩] 10월 정기 답사 하편 (백제의 관) (0) | 2010.10.22 |
학봉 김성일선생이 지었다는 석문정을 찾아서 (0) | 2010.10.10 |
안동 막곡동 삼층석탑을 찾아서 (0) | 2010.10.09 |
안동석탑리방단형적석탑을 찾아서 (0) | 2010.10.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