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문화재답사

[스크랩] 경남 합천 죽고리삼존불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3. 4. 25. 10:13

경남 합천 죽고리삼존석불(陜川 竹古里三尊石佛)

 

 

 

죽고리 삼존불

 

경상남도 합천군 적중면 죽고리 산37번지, 옛 절터라고 전해지는 곳에 있는 석조삼존불로, 1998년 11월 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8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옥두봉의 북쪽자락으로 석불은 마을 민가 뒤편 산자락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사지와 불상이 동일한 위치에 있었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977년 보고서에는 이를 동일 위치로 파악, 현재 불상이 있는 곳을 사지(寺址)로 보고하였다

 

중앙에는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좌상이 있고 그 좌우에 입불상 2구가 배치되어 있는데 보살상이다.

 

마을 뒷쪽의 대나무밭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삼존석불에 대해 문화재청은

"원래 묘(墓)가 있었던 자리에 묘 주인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묘는 없고, 3기의 불상만 남아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석불은 여러 차례 위치를 옮겨 봉안되었던 탓에 원래 사찰터는 아디인지 정확한 자리를 모른다고 하나 마을 주민들은 현재 불상 앞쪽에 있는 대나무숲을 사지로 인식하고 있으며, 묘자리를 쓰기 위해 불상을 옮기고 난 이후 절이 폐사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최근에 이 삼존불이 도난을 당했다가 본존불은 산등성이에서, 협시보살은 부산에서 되찾았다고 하며 이곳 사지(寺址)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금동불상 1구가 출토된 바 있다는 보고서도 있다.

 

 

 

 

삼존불 중에서 본존불은 좌상으로 비로자나불이며 좌우 협시보살상은 입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삼존불상은 통일신라 하대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조성된 상이라고 추정된다.  

 

 

 

 


방형 대좌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결가부좌한 비로자나불좌상(毘盧舍那佛座像)으로 높이가 160㎝이며, 어깨너비는 70㎝,  무릎 폭 80㎝, 현재 두께 31㎝로 목 부분과 후두부는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으며 배면은 결실된 상태이다.

 

비로자나불은 “널리 밝은 빛을 두루 비춘다(光明遍照)"는 뜻의 빛의 부처로,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한다.
이 부처는 연꽃받침대[蓮花臺] 위에 앉아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형상지권인(智拳印)을 취한다. 이것은 부처와 중생이 하나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로자나불에서만 볼 수 있다.
이때 연꽃받침은 비로자나부처가 다스린다는 우주만물을 간직한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상징한다.

 

 

 

 

뒷면의 처리가 간결하게 생략된 것을 보아 거신광배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본존불은 나발(螺髮)의 머리에 육계(肉髻)가 큰 편이며, 얼굴은 전체적으로 방형으로 뺨과 턱의 굴곡이 표현되어 있으며, 이마 중앙에 백호공이 크게 새겨져 있다. 이목구비는 마멸로 인하여 뚜렷하지 않으나 눈이 약간 치켜 올라간 형태이며 입은 작게 표현되어 있다.

잘라진 목부분은 시멘트로 보수한 탓에 3도의 유무는 확인을 할 수가 없다

 

어깨가 둥근 장대한 체구에 대의(大衣)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편단우견식(偏袒右肩式)으로 보이는데,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가사자락이 무릎 위에 올려진 표현이 매우 특이하다.

 

 

비로자나불의 수인

(일반 비로자나불과는 좌우손의 상하가 바뀌어져 있다)

 

 

수인(手印)은 가슴 앞에서 두 손을 모아 오른손의 검지를 곧추세워 왼손으로 감싼 비로자나불 고유의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는데, 경주 불국사금동비로자나불좌상이나 광주 증심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 처럼 양손의 상하가 바뀌어 있다.

결가부좌한 다리는 왼발을 위로 하고 발은 몸에 비해 작게 표현되었으며 불신의 측면과 결가부좌한 무릎 폭도 좁아 신체의 비례는 사실감이 결여되어 있다.

이 불상은 신체의 굴곡을 표현하여 양감이 풍부한 점, 얼굴의 형태, 착의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후기에 제작된 불상일 가능성이 높으며 대구 동화사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나, 봉화 축서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같은 9세기 통일신라의 조각양식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불신이 좌대에 앉아 있는 형태와 불신의 뒷부분을 보아 광배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지나 현재 광배는 없는 상태이다. 

 

 

 

 

전면의 향로

 

 

현재 대좌는 높이 116㎝의 방형으로 상대석과 하대석은 나중에 만들어 넣은 것이며 중대석만 본래부터 있던 부재이다 .
중대석은 52.5×45×53㎝의 크기로 각 면에 안상을 새기고 그 내부에 문양을 돋을새김하였다.

안상 내 문양은 정면에 향로, 바라보아서 오른쪽면에는 구름무늬(운문 雲紋), 왼쪽면에는 연엽문( 蓮葉文)을
새기고 있으며, 후면은 파손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안상 및 문양의 형태로 보아 불상과는 제작시기를 달리하는 것으로 보이며, 고려중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우협시와 좌협시보살

전체적인 형태는 비슷하나 팔의 모양이 다르다

 

불상의 좌우에 서 있는 석조보살입상은 좌협시128㎝, 우협시 124㎝의 높이로 손 모양이 반대인 것을
제외하면 모든 표현이 거의 동일하다.

불두는 24㎝로 전체 비례에 비하여 작은 편인데, 머리에 보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두 불상 모두 머리정상 부분이 파손된 상태이며 보관은 확인되지 않는다.

 

둥근 얼굴형에 이목구비가 다소 어색하게 새겨져 있으며, 목이 두껍고 길다. 한 손은 들어 가슴 부근 중앙에서 영락을 쥐고 있는 듯한 모습이며 한 손은 내려뜨려 외장하고 있다.

천의는 양 어깨에 걸쳐 각각 팔을 휘감아 흘러내리고 있는데, 가슴으로 들고 있는 팔에 걸쳐진 천의자락은 정면에서 ‘U’자형으로 접혀 늘어져 있다. 요포를 착용하여 무릎 아래까지 늘어뜨렸으며 옷주름은 단순한 형태의 곡선으로 표현하였다.

허리띠는 중앙에서 ‘X’자형으로 매듭지은 후 다리 중앙에 끈을 길게 늘어뜨린 형태이다. 다리에 늘어뜨린 허리띠의 중앙에 능형문에 가까운 매듭 형태의 장식이 새겨져 있으며 끝부분에는 술이 달려 있다.

가슴에는 반원형의 목걸이에 3개의 수주가 연결된 형태의 영락을 걸치고 있으며, 팔뚝찌와 팔찌를 착용하였다.

보살상의 발은 별도로 제작되어 결구되었던 것으로 현재 우협시보살의 발 일부만이 남아있다.

대좌는 사각의 앙련형태로 크기는 우협시보살의 것이 64×53×28㎝, 좌협시보살의 것이 61×53×22㎝이다. 대좌의 중앙에는 36×27㎝ 가량의 타원형 받침이 마련되어 있으며, 후방에 광배를 결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크기 7×4㎝, 깊이 4㎝의 방형 홈이 있다.

두 보살상은 두께가 15~22㎝로 납작한 형태이며, 배면은 조각되어 있지 않다.

보살상은 장신구, 옷주름 등의 도식화된 표현 등으로 보아 석조여래입상보다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전기 이후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좌협시 보살 입상은 지대석과 대좌가 한 돌이며 대좌에는 큼직한 복련을 새겼다.

보살상의 뒷쪽 대좌 위에는 신광을 세워 꽂았던 홈이 파여져 있어 거신광배를 세웠음을 짐작케 하는데 현재 남아있지 않다

 

우협시불. 좌협시불은 수인만 바뀌었을 뿐 흡사하고 손에는 지물을 들고 있지만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반대쪽 손은 여원인으로 보인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좌우의 협시불은 문수와 보현보살이 아닌가 추측 되며 형식화가 진행된 지방양식의 불상으로 보인다.

이 협시불은 조각 기법등을 볼 때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전기에 조성된 불상의 양식으로 생각된다

 

 

 

죽고리 석조삼존불 처럼 본존불에 비해 특이하고도 섬세한 조각 기법을 보이는 협시보살을 석불로 조성해 놓은 사례는 극히 드문 것으로 체계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찾아가는 길

 

 

 

죽고리 삼존불은 네비에도 나오지 않고 찾아가는 길에는 안내판 하나 보이지 않아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요즈음은 마을에 들어서서도 동리주민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 찾는데 애를 먹었다.

 

합천군 적중면 죽고리 산 101번지를 입력하여 죽고리 마을로 들어간다. 죽고 2교라는 다리를 건너 좌회전, 마을회관 앞에 주차를 한 뒤 마을쪽으로 보면 3개의 골목이 보인다.

가운데 골목으로 들어서서 마주치는 집 오른쪽으로 돌아 가면 대나무 숲이 이어지고 그 끝머리에 삼존불이 있다. 주차한 곳에서 약 150m 정도 걸으면 된다

 

 

 

 

출처 : 토함산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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