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문화재답사

마애부도가 있는 청도 신둔사를 찾아서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3. 4. 25. 11:14

 

마애부도가 있는 청도 신둔사를 찾아서

 

 

 

신둔사는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화악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화악산은 청도

에서는 남산이라 하며 청도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산으로 신둔사는 화악산

기슭에 있으며 대웅전 왼쪽 요사체 뒤편

바위에는 부도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에 사각으로 구멍을 뚫고 사리를 봉

안하였다는데, 바위에는 석종 모양의 형

태를 선각으로 나타내고 사각형의 사리공이

뚫려 있으며 사리공 아래에는 보현수 이씨

사리탑 함풍2년 임자4월20일 이란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성시기가 1852년

이며 사리함의 주인공은 스님이 아

니고 보현수라는 법명을 쓰는

신자의 사리함 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신둔사는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화악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마애부도가 있는 곳입니다

 

 

신둔사는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산 657번지 영남의 명산이자

청도의 진산인 남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화악산은 청도에서는 남산이라 하며 청도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산으로 신둔사는 화악산 기슭에 있습니다

 

대웅전 좌측 요사체 뒤에 있는 바위에는 부도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 사각의 구멍을 뚫고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바위에는 석종 모양의 형태를 선각으로 나타내고 사각형의 사리공이

뚫려 있는 특이한 부도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리공 아래에는 보현수 이씨사리탑 함풍2년 임자4월20일 이란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성시기가 1852년라고 합니다

 

사리함의 주인공은 스님이 아니고 보현수라는 법명을 쓰는 신자의

사리함 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신둔사는 1173년(고려 명종3년) 보조국사가 창건하여 봉림사라 하였으며

1667년(현종8년) 상견대사가 중창하고 1878년(고종15년)에 다시 중수

하여 신둔사(薪芚寺)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둔사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마애부도가

요사채 뒤편 커다란 바위에 두기가 새겨져 있는 절입니다.

 

자연암벽에 마치 석종처럼 생긴 부도의 형태를 음각으로 새겨 놓았는데,

그 가운데에 사각구멍을 뚫어 사리를 봉안하고 아래에 명문을 새긴

것으로 국내에는 그 수가 많지 않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마애라는 말은 바위 면이나 돌에 선각이나 양각으로 어떤 주제나

사상을 담기 위하여 새기는 것을 말하며 바위에 불상을 새기면

마애불 이라 하고 탑을 새기면 마애탑 이라고 합니다

 

부도란 승탑이라고도 하는데 불가에서 일반적으로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들이 열반을 하게 되면 화장을 한 후 남겨진 뼈나

사리를 수습하여 모시는 묘탑입니다

 

부도탑은 만드는 형식에 따라 여러 종류로 구분되며,

대개 5종류로 구분을 할 수 있는데

 

탑신이 팔각인 팔각원당형부도. 기단부가 방형인 방형부도.

탑신이 공 모양인 구형부도. 종 모양을 닮은 석종형 부도.

모양이 특이한 이형 부도 등으로 구분합니다.

 

이러한 부도들은 거의가 입체적인 조형물이지만 이 다섯 가지

부류에 들어가지 않는 특이한 형태의 부도가 마애부도로

조선 후기에 들어와 새롭게 출현한 형태입니다

 

마애부도란 자연암벽에 조성한 부도로 큰 바위 면을 파내고 감실을

만들어 사리나 유골을 넣은 다음 돌로 입구를 막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인의 이름 등 부도와 관련된 명문을 새겨 놓는 형태로서

화려하고 세련된 통일신라나 고려시대 부도와는 달리 소박하고

간결하게 조성된 것이 마애부도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부도를 조성하는 것보다 쉽고 바위 하나에 다수의 사리를

모실 수도 있는 장점이 있으나 장식성이나 예술성을 추구하는

면에서는 주목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합니다

 

마애부도는 주로 조선후기 이후(18C∼19C)에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되었으며, 승려들뿐만 아니라 불심이 깊은 일반 신도들에게도

채용된 양식으로 산악숭배 사상과 바위 신앙이 불교사상에

접합되어 발생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마애부도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서울 경기지역에서 잠시

유행하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그 자취를 감추게 되어

전국적으로 남아있는 숫자도 매우 적다고 합니다

 

경기도 안양, 경기도 남양주, 서울, 경남 합천, 경북 상주, 강원 영월,

청도 신둔사 등 전국적으로 24기가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신둔사 요사체의 뒷쪽 큰 바위 면에 석종형 선각부도 1기가 있고

요사체 왼쪽 모퉁이를 돌면 또 1기의 석종형 부도가 있습니다

 

요사체 뒷쪽 부도에는 석종형 부도의 형태를 선각으로 나타내고

사각형의 사리공이 뚫려 있으며 사리공 아래에는

보현수이씨 사리탑 함풍 2년 임자 4월 20일

(普賢修李氏舍利塔 咸豊二年壬子四月二十日)

이란 명문이 있습니다.

 

명문에 의하면 조성시기가 1852년(철종 3년)이며 사리공의

주인공은 스님이 아니고 '보현수'라는 불명을 쓰는

신자의 사리함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스님이 아니라도 사찰에 공덕을 많이 한 불신자의 사리함도 사찰

구역 안에 건립한 예가 다른 곳에서도 발견이 되는 것을 보아

이 사리함 설치 당시는 스님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마애부도에

안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신둔사 요사체 왼쪽으로 돌아가서 있는 마애부도는 또 다른 형태로

석종의 하대석과 상륜부가 있는 석종형태의 마애부도입니다

 

이 마애부도에서 왼쪽으로 약 20여m 떨어져 있는 마애부도는 잎서 본 것

보다는 좀 더 장식성을 가미하였으나 舍利塔(사리탑)이라는 명문만

사리공 아래 모각되어 있어 누구의 사리탑인지 알 수 없습니다

 

좌대가 있는 석종형의 사리함에 보주가 있는 형태로 선각을 하였으며

윗쪽에 사리공이 있고 아래에 사리함(舍利塔)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있습니다.

 

사리공의 크기는 가로 3cm 세로 5cm의 사각형태로 사리공을 막았던

돌과 사리는 없어지고 구멍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청풍루(淸風樓)는 1층을 출입구로 사용하고 2층은 불전사물의

봉안장소와 대법회시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청풍루는 1988년에 신축한 시멘트 건물로서 정면 3칸 측면 1칸의 2층

누마루 건물로 아래는 육화문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신둔사의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면적 7.6평의 크기에 석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불화는 1918년에 금어 김벽산(金碧山)에 의하여 조성된 석가여래

영산회상탱과 신중탱,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삼성각은 독성(獨聖)·산신(山神)·칠성(七星) 이렇게 삼신을 같이

모시는 건물로 우리나라 토속신앙과 결부된 것이라고 합니다

 

오층석탑은 근래에 조성한 탑으로 영산보탑이라고도 하는데

1924년에 송호 영산 주지스님에 의해 세워졌으며

 

탑 안에는 진신사리와 문수․ 보현보살,

법화경 등을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신둔사에는 전설 하나가 전해지고 있는데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옛날 삼한시대 때 변한의 소국 중의 하나인 이서국이

청도 지역에 웅거하고 있었는데 신라가 이서국을 공격하였다고 합니다.

 

청도읍 북쪽, 지금 덕사가 있는 주구산은 이서국때 이서산성이 있던 곳으로

이곳의 천혜의 요새에 의지하여 신라와 치열한 격전을 치르다가

 

서기 279년 (신라 유례왕 14년)에 이서국이 마지막 결전에서 패하자 이서국

왕실 사람들이 바로 이곳으로 피난하여 한 동안 살았다고 합니다.

 

그 피신처가 부근에 있는 은왕봉이며 신둔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신둔사가

이서국 왕실의 피신처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정하고 있으며

 

화악산에 자리한 신둔사는 고려 명종 3년(1173년)에 보조국사께서

창건하여 봉림사라 하였으며, 조선 현종 8년(1667년) 상견대사가

중창하였고, 고종 15년(1878년)에 다시 중수하여

신둔사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