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경주 사천왕사터서 사적비편 발견
경주 사천왕사서 통일신라 추정 사적비편 발굴
녹유전 정체는 '神將'인 듯

발굴중인 사천왕사지 동쪽 귀부(원안이 발견 지점임)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된 경주 시천왕사(四天王寺) 터에서 통일신라시대때 사천왕사 창건 관련 내용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적비(事蹟碑)의 조각이 발견됐다.
특히 이 조각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神) 중 하나인 '신장'(神將)이라는 문구가 확인됨으로써 앞서 이 사찰의 목탑터에서 출토된 녹색 유약을 바른 벽돌(녹유전 綠釉塼)의 정체를 둘러싼 한국미술사학계의 해묵은 논쟁이 끝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사천왕사 터를 연차 발굴 중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가람 구조와 사역(寺域) 확인을 위한 최근 발굴조사 과정에서 절터 남쪽에 위치한 한 쌍의 귀부(龜趺. 거북 모양 비석받침) 중 동편 귀부 앞쪽 기단 석열(石列)에서 사천왕사 사적비(事蹟碑)의 일부로 추정되는 조각 1점과 이수(비석 윗부분의 용무늬 장식) 조각 1점을 각각 발견했다고 24일 말했다.
이 석비 조각은 화강암 재질로, 가로 55㎝, 세로 11㎝, 두께 14㎝ 정도에 지나지 않는 소형 비편이지만 매끈하게 다듬은 비면에 3.5㎝가량 되는 간격으로 가로와 세로로 음각선을 넣고 그 안에 글자를 새긴 것으로 드러났다.
글자는 2~2.5㎝ 크기에 해서체로, 통일신라시대 석비에서 보이는 각자법(글자 새김법)을 보여준다고 소재구 소장은 말했다.
이 비편은 가로로 길게 조각난 형태로 비문은 15행 정도 확인된다. 그러나 1행당 글자가 1~3자씩밖에 존재하지 않아 문자는 선명하지만 문맥이 거의 연결되지 않는 데다 내용 역시 알기는 어렵다고 연구소는 전했다.
비문 조각에서 확인된 글자는 신장(神將)ㆍ대왕(大王)ㆍ16일(十六日)ㆍ거악(巨嶽)ㆍ특(特)ㆍ도(道)ㆍ이(而)ㆍ강(疆)ㆍ월(月)ㆍ철(徹)ㆍ영(英) 등의 30자 정도다.
이 중에서도 '신장'이라는 글자는 사천왕사 목탑터 출토 녹유전에 표현된 조각의 정체와 관련해 비상한 주목을 끈다.
그동안 이 녹유전 조각에 대해 신장의 일종인 '필부신중'(八部神衆)으로 보는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의 학설과 사천왕(四天王)으로 간주하는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주장으로 크게 엇갈렸다.
하지만 이번에 통일신라시대에 작성한 사천왕사 추정 사적비에 '신장'이라는 글자가 확인됨으로써 녹유전의 정체는 '신장'일 가능성이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비편이 발견된 곳과 가까운 지점에서는 이수 부분의 용 비늘 무늬를 새긴 석재(잔존 크기 15.5~18㎝) 1점도 같이 발견됐다.
경주연구소 박종익 학예실장은 "이수 역시 조각이 정교하고 통일신라시대의 조형성을 보이므로 비편과 이수는 원래 같은 비석의 일부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201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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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사천왕사터서 사적비편 발견
신라가 삼국통일 직후인 679년(문무왕 19) 창건한 사천왕사(四天王寺)의 사적비(事蹟碑)로 추정되는 석비(石碑) 조각 1점(사진)과 이수(비석 윗부분의 용무늬 장식) 조각 1점이 각각 발견됐다.
사적 제8호 경주 사천왕사터를 발굴 조사 중인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절터 남쪽에 위치한 한 쌍의 귀부(龜趺·거북모양의 비석받침) 가운데 동쪽 귀부 앞쪽 기단 석열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사천왕사 사적비로 추정되는 석비 조각 1점과 이수 조각 1점을 각각 발견했다고 24일 밝혔다. 서쪽 귀부는 682년(신문왕 2) 건립된 문무황릉비가 세워져 있던 곳이다.
이번에 발견된 석비 조각은 가로 55㎝, 세로 11㎝, 두께 14㎝ 정도 크기의 화강암 석재다. 비면을 매끈하게 다듬은 뒤 3.5㎝ 정도의 간격으로 가로세로 음각선을 긋고 그 안에 2~2.5㎝ 크기의 해서체 글자를 새겼다. 가로로 길게 조각나 있는 형태여서 비문은 15행이나 남아 있어도 1행당 1~3자씩밖에 존재하지 않아 문맥이 거의 연결되지 않고 내용 또한 알기 어렵다. 현재 '신장(神將), 대왕(大王), 십육일(十六日), 거악(巨嶽), 특(特), 도(道), 이(而), 강(疆), 월(月), 철(徹), 영(英)' 등 30자 정도의 글자가 확인된다. 박종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비문 중 '신장(神將)'은 '녹유사천왕상전'으로 알려진 사천왕사터 출토 녹유전(綠釉塼·녹색 유약을 입혀 구운 벽돌판)의 성격 규명에 귀중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석비 조각의 발견지점과 가까운 곳에서 이수 부분의 용 비늘무늬가 새겨진 석재(잔존크기 15.5~18㎝) 1점도 같이 수습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발견된 석비와 이수 조각이 서쪽 귀부 부근에서 출토된 문무왕릉비 조각과 비교해 재질이나 음각선의 크기 등이 다르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이 지역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해 다른 석비 조각 등의 존재여부를 계속 확인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일보/최영창기자 2011.3.24>